중국 문화 숨쉬는 운남성 탐방기2
문화 ·관광 역점 투자... 관광산업 급성장 할 듯
박물관뉴스 | 2008:03:24 [11:29]
▲ 여강고성 전경.     © 박물관뉴스
바쁜 일정에 움직인 탐방단은 금번 일정으로 대리와 여강을 선택했다. 대리는 대리백족자치주의 주도로 쿤밍과는 동쪽으로 377㎞ 거리를 두고 있다.
 
서한시대(기원전 77~37년) 무제 때부터 미얀마, 인도로 이어지는 서남 실크로드의 주요 요충지 역할을 하면서 발전했다. 7세기부터는 통일부족국가인 남조국과 대리국이 세워져 한때 윈난의 중시지로도 번영했지만 13세기 10만 몽고군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면서 윈난의 중심을 쿤밍으로 모두 넘겨주게 되었다.
 
현재는 북경, 실크로드, 티베트, 동남아에서 올라온 여행자들이 모두 모이는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며, 중국 젊은이들에게는 신혼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대리고성은 동으로는 만년설에 휘감긴 창산이, 서로는 얼하이 호수가 있는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은 대리도시를 둘러싼 성이다. 성밖으로는 護城河가 흐르고 성안으로는 동서남북으로 길이 뻗어 있다. 지금은 옛 성의 흔적만 군데군데에 남아 있지만 남북의 문은 남아서 대리고성으로서의 모습을 지키고 있다. 明 초에는 지방행정의 중심지였고, 남방 실크로드의 관문으로서 물품의 집산지였던 대리는 그 역사만큼이나 고색창연한 마을길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또한 성안으로 들어가면 남북으로 뻗은 길옆으로 백색의 벽에 청색의 기와를 얹은 집들이 색감의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집집마다 크고 작은 화원을 가꾸고 있어서 아름답다. 대리 사람들은 유난히 꽃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이곳의 大理山茶花, 팥배나무꽃 등은 매우 유명하다. 대리고성을 여행하는 방법은 천천히 도시를 걸어다니는 방법이 제일이다. 대리 자체가 워낙 작은 도시라서 고성의 남문에서 북문까지 도보로 채 30분이 걸리지 않는다.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마을을 음미하듯 걷다보면 은은한 꽃향기가 마음을 상쾌하게 만든다.

대리 주변에는 古塔이 유난히 많다 그 중에서도 大理三塔은 1961년에 국가중점 문물로 지정될 만큼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대리의 상징처럼 우뚝 선 모습은 멀리에서도 쉽게 보인다.

3개의 탑 중 주탑인 千尋塔은 당나라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높이 70m, 16층의 전탑양식으로 되어있다. 주탑 양옆으로는 높이 40m, 10층 크기의 탑 2개가 호위하듯 서있다. 아마도 2개의 탑은 송대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최근 이 3개의 탑을 복구하면서 680여 건의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지금까지도 대리국을 연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대리박물관은 얼하이호 근처에 있는데,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건물은 고성 중심거리에 있는 두문수의 원사부(장군의 행정관사)였다. 박물관 안에는 대리국 시대의 비석 108기가 놓여 있는 비림이 있고, 특히 대리국 시기의 바이족 목제 조각인 높이 1.6m의 천왕상이 유명하다.
 
중국에서 여강 만큼 매력적인 도시는 없다. 영화 세트장인 듯, 과거로 돌아간 듯 明나라 시대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여강의 매력에 흠뻑 빠져드는 하루입니다. 또한 옥룡설산에 올라 만년설을 밟는 즐거움은 운남성 여행의 백미이다.

▲ 여강고성의 전통가옥 전경과 지붕.     © 박물관뉴스
려강은 수 백년 전의 모습 그대로 전혀 변형됨이 없이 시간을 지키고 살아온 땅, 바로 여강을 일컬음이다. 신대로의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야트막한 산의 비탈길에 오래된 집들이 늘어서 있다. 빼곡이 들어선 집들 사이에는 수로가 흐르고 곳곳에 샘이 있어서 마을 전체가 자연과 어우러져 있다. 기와집으로 가득한 거리의 모습은 유럽인들에게는 물론이고 우리에게도 아득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가능케 한다.
  
리장 고성은 일명 大硏鎭이라고도 불리운다. 송나라 말, 원나라 초인 1253년, 대리국을 정벌하러 가던 후에리에라는 장수가 병영을 세운 것으로부터 이 고장의 역사는 시작된다. 이 후 명나라 때에 성읍으로서의 규모를 갖춘 이후 현재까지 시간이 정지된 듯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고성의 북쪽에는 의샹산, 사자산등이 있어서 북쪽으로부터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어 겨울에도 그다지 춥지 않다. 특히 신기한 풍광은 옥룡설산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만년설이 녹은 신선한 물(옥천수)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고성 곳곳을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물줄기들로 인해 리장의 정경은 참으로 독특하다. 성내의 옥천수는 도시를 지나가며 많은 집들을 흐른다. 길마다 수로가 통하고 집집마다 문 앞에 푸른 물이 흐르고 있다. 어느 거리나 골목이나 모두 다 작은 다리가 있고 그 밑으로는 맑은 물이 흐른다.

고성의 중심에는 쓰팡지에(四方街)가 있다. 여기에 방사상으로 길이 나있는데 바닥이 모두 다듬은 돌로 되어있다. 이 거리는 수수하면서 고풍스러운 건축과 우아한 예술구조로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고성은 나무로 된 기와 건물이다. 3면이 방이고 한 면이 벽인 구조로 되어있는데, 이 군락이 독특하다.

이렇듯 도시를 흐르는 물줄기와 건축물로 인해 많은 건축학자들의 칭송과 「고원의 옛 소주」, 「동방베니스」라는 칭호를 받았다. 지금까지 줄곧 무수한 세계의 관광객들이 고성, 설산에 매혹되어 수수하면서 고풍스럽고 자연적이며 우아한 고성에서 떠나기를 아쉬워한다. 97년 12월 4일 리장 고성은 unesco 세계문화유산지구로 지정되었다.
 
▲ 옥룡담에서 동파문자로 책만들기.     © 박물관뉴스
옥룡담 이라는 곳은 여강 고성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어 시내에서 걸어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호수 면에 비취는 옥룡설산의 아름다운 모습과 수정처럼 맑은 물로 인하여 선경을 연출하고 있는 곳이다.
 
이 곳의 경치를 보고 청나라 때 건륭황제가 친필로 <玉泉龍神>이라 이름하였다 하여 玉泉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호수 가운데에는 五凰樓라고 하는 건물이 있는데 높이가 20m, 기둥이 32개, 3층의 규모를 자랑한다. 공원 안에는 여강 동파박물관이 있어 나시족의 문화를 접할 수 있다.
 
 麗江의 빼놓을 수 없는 象徵, 玉龍雪山은 이름 그대로 1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 雪山이다. 20km 떨어진 麗江의 서북부에 웅장하게 서 있는데, 麗江시내에서 이곳의 主峰을 볼 수 있다. 主峰은 해발 5,596m로 이곳에 눈이 녹지 않아 麗江에서 이 산을 바라보는 우리가 이곳을 雪山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옛부터 이 산의 산맥이 마치 은색의 龍이 춤을 추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玉龍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雪山의 奇妙한 姿態가 옛부터 지금까지 많은 여행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 어느 누구에게도 정복된 적이 없는 처녀산이다.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결코 정복하기 어려운 산이기 때문이다. 또 이곳에서는 雪山의 기경을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高原山林의 풍모도 볼 수가 있는데, 희귀한 식물들이 많아 현대의 얼음하천 박물관, 식물의 왕국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현재 옥룡설산은 제각각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大索道, 云杉坪, 毛牛坪이라는 세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중 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구간은 대삭도이다.
 
우리 (사)경기도박물관협의회에서는 해외 박물관의 전시 · 운영 등에 대한 벤치마킹을 추진하고 있던 중 경기도박물관과의 교류협력를 추진 중인 운남민족박물관과의 교류를 희망한 바, 본 연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중국은 상상외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빌딩들이 수없이 많이 세워졌으며, 거리의 사람들도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주로 박물관이나 문화유적지를 중심으로 운남성을 돌아보았다.

운남은 4계절의 기온 변화가 그리 크지 않아 생활하기에 편리하고 각종 문화유적이 많기 때문에 세계의 많은 관광객들이 항상 붐비는 곳이다. 특히 한국 관광객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어 관광지의 상인들은 기본적인 한국말을 몇 마디씩을 할줄 알았다. 본 탐방에서는 이런 운남성의 관광상품 개발에 대한 몇 가지 벤치마킹을 할 수 있었다.

▲ 옥룡설산 절경.     ©박물관뉴스
첫째 아주 빠른 변화를 볼 수 있었다. 박물관의 경우 중국은 대체로 북경이나 상해를 제외하고는 매우 낙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금번 방문했던 운남민족박물관의 경우 외관을 제외한 전시실이 새로이 리모델링 되었다고 하였으며, 전시기법도 산만하게 진열하여 훌륭한 전시유물이 돋보이지 않는 특징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여강의 동파박물관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둘째, 민족촌, 석림, 옥룡설산, 옥룡담 등 관광지는 어느 선진국의 관광지에 뒤지지 않는 관광지상품을 개발하고 있었다. 민족촌은 83만 헥타르의 넓은 면적에 12개의 소수민족 마을을 형성하고 각 마을 마다 고유의 전통 문화를 개발하여 어디를 가도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물론 다양한 소수민족의 생활양식이 달라 관광지상품이 다양하다고 하지만 그것을 개발하고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텐데... 또한 어느 관광지를 가더라도 그 규모가 매우 넓어 내부에서 이동할 수 있는 차량이 준비되어 있거나 고도가 높은 곳은 리프트나 케이블카를 만들어 이동이 용이하게 하였다.

셋째, 문화상품의 개발과 판매가 다양하고 활발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관광지에 가면 쇼핑센터로 유도하기만 하지 적극적인 판매행위를 하지 않고 또 아주 특별한 상품을 판매하는 곳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중국은 판매하려고 하는 상품에 대하여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고, 지역의 특산품을 활용한 상품을 아주 많이 개발하여 판매함으로써 관광수익을 높이고 있다. 예를 들어 운남성의 경우 실크와 보이차가 유명한 곳이다. 실크를 판매하는 곳은 실크전시장과 실크로 만든 옷을 입고 상설 패션쇼를 하고 있으며, 한국인을 위하여 조선족을 고용하여 판매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상품 판매 방법은 우리나라에서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넷째, 박물관, 관광지 등의 입장료가 매우 고가임을 알 수 있다. 석림의 경우 2~3시간 소요되는 코스로 입장료는 중국화 60위안(한화 약7,800원), 운남성박물관 입장료 10위안(1,300원)이다. 일반적으로 고급음식점에서 한끼 식사비가 100위안을 넘지 않는 것에 비하면 관광지의 입장료는 매우 비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관광지에는 많은 관람객이 있어 관람료 수입 또한 국가 경제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중국은 매우 급격하게 변화 하고 있다. 다른 분야는 차지하고서라도 문화 · 관광분야에서도 oecd국가라 자부하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언제 어디를 가든 항상 문화공연이 펼쳐지고 있었으며, 그들은 아주 친절하고 밝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에 못지않게 시설투자도 많이 하여 불과 몇 년 사이에 몰라볼 정도로 변화하여 관광객들이 전혀 불편하지 않게 여행하고 있었으며 그 수 또한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음을 볼 때 앞으로 관광산업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대변해 주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겠다.  
원본기사 보기:박물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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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3:24 [11:29]   최종편집: ⓒ newsw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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